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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미디어오늘]쪽잠 자던 KTV 자막노동자 “무늬만 프리랜서, 노예노동”

by 국회의원 이기헌(고양시병) 2025. 1. 2.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3455

 

쪽잠 자던 KTV 자막노동자 “무늬만 프리랜서, 노예노동” - 미디어오늘

지난 20일, 12·3 내란 사태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KTV국민방송이 비상계엄을 비판하는 정치인 발언을 빼라고 자막 담당 노동자에게 지시한 사실이 폭로됐다. 부당한 방송지시에 맞선 당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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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계엄방송 자막삭제 거부→해고 통보 받은 지교철씨
-KTV, 지씨에 31일 계약갱신...“철회로 끝나선 안 돼” “비정규직 편법계약 규명돼야”

▲KTV에서 프리랜서 계약 아래 24시간 근무체제로 자막을 전담하고 있는 지교철씨. KTV가 그를 위장 프리랜서로 계약했다가 계엄을 비판하는 자막 삭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통보했다는 폭로가 국회에서 나온 뒤 문체부는 감사를 예고했다. KTV는 지난 31일 그와 계약갱신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지난 20일, 12·3 내란 사태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KTV국민방송이 비상계엄을 비판하는 정치인 발언을 빼라고 자막 담당 노동자에게 지시한 사실이 폭로됐다. 부당한 방송지시에 맞선 당사자는 KTV에서 ‘프리랜서’ 신분으로 일해온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KTV의 주인은 원장이 아니라 국민”이라며 부당 지시라고 반발하다 계엄 해제 직후 사실상 해고를 통보받은 사실이 국회 긴급현안 질의로 알려졌다.

KTV의 자막을 전담해온 지교철 씨는 이름은 프리랜서지만 팀장의 지시와 구속을 받고, 24시간제로 홀로 교대 없이, 쪽잠을 자며 일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노예노동”이라고 불렀다. 지교철 씨가 지난 3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문제는 정권 입맛에 맞춘 방송장악뿐이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한 이유다. 

지씨는 지난 2006~2008년 KTV에서 계약직 기자로 일했다. 이후 2013년 KTV에서 다시 일하게 됐는데, KTV 측 요구로 ‘전문위원’이란 이름의 프리랜서 계약을 했다. 그렇게 12년 일했다.

지씨 근무는 2013년 언젠가부터 24시간제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는 “초반엔 원장이 출근길에도, 새벽에도 전화를 하면 바로 자막을 고쳤다. 지하철을 타다가도 내려 PC방에서 일했다. 그러다 보니 KTV 측이 그냥 출퇴근을 하지 말고, 집에서 일을 하라고 하더라”며 “출퇴근 시간을 아껴 일을 하라는 취지”였다고 했다. 근로기준법은 주 52시간 근무시간 제한을 어긴 사업자를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그러나 그에겐 ‘노동자가 아니다’란 이유로 주말과 공휴일도, 휴가도, 4대 보험도 없었다.

 

▲지난 12월3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입장을 전달하는 KTV의 계엄방송 화면. 현재 KTV 홈페이지엔 지교철 씨가 올렸던 국회 상황과 정치인의 계엄방송 비판 발언 등 자막은 대부분 찾아볼 수 없다.

잠을 언제 자는지 묻자 그는 “잠깐 잠깐씩”이라며 “밤중 평균 서너번은 일어난다. 자다 깨다 한다”고 했다. 살인적 노동환경에 익숙해진 그는 만성 불면증과 근력 감소, 소화불량으로 치료제를 복용한다. 그가 팀장을 통해 이메일 등으로 근무 여건을 개선해달라 호소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계엄방송 부당 지시’ 사태 땐 KTV 측의 지시가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확인하는 핵심 단서다. KTV의 팀장은 지씨에게 비상계엄 이후 새벽 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최소 6차례에 걸쳐 전화로 자막 삭제 등과 관련한 지시를 했다. 해당 팀장은 “원장과 부장” 뜻이라고 거듭 강조하다, 지씨가 끝까지 거부하자 ‘신규 채용공고를 내겠다’고 했다.

KTV의 팀장은 이날 지씨에게 전화로 “대통령 얘기하고 행정부 얘기하고 포고령 내린 거하고 이런 사실적인 얘기만 하라”며 “다른 사법부 이런 얘기는 하지 마라”고 했다. “원장님 또 전화 왔는데”라며 “팩트 위주로 해서 행정부 얘기만 하라. 오세훈 시장이라던지 한동훈이라던지 이런 얘기는 다 빼라 한다”고 했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가 의결된 뒤에도 정치인 발언 자막을 넣지 말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KTV의 뉴스 자막을 전담하는 지교철씨가 비상계엄을 통한 내란사태 당시 이들 자막을 내보낸 뒤 KTV 측은 그에게 삭제를 지시했다. 20일 SBS 보도화면 갈무리

지씨는 응하지 않았다. 계엄방송 비판 발언 삭제가 부당하다고 거듭 밝히던 지씨가 “전쟁이 나도 다루지 않을 겁니까”라고 되묻자 “그걸 저희가 판단하는 거지 왜 선생님께서 판단하는 거예요?”라며 “최종데스크는 우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1월2일 날 개편한다. 지금 공고 낼 테니 계속하고 싶으면 지원서를 내시라”고 했다. 지난 10년간 그의 계약은 신규 공고와 지원 없이 갱신됐던 만큼, 그에겐 사실상의 해고 통보였다. 

지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인이라면 당연히 보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대통령은 이제 내란 범죄자고, 당시 국회와 거기 모인 시민들이 중심이었다. 당연히 그 자막은 올라가야 했다”고 했다. 이어 “정부 방송사가 솔선수범해 모범을 보이긴커녕 악독하게 착취에 앞장선 것은 정말 슬프다”고 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긴급현안 질의에서 KTV ‘부당해고 통보 사태’를 질타했다. KTV는 이 사태로 문체부의 감사를 앞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6일 이은우 KTV 원장을 내란선전 혐의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형사 고발했다. 같은 날 지씨에 대한 부당해고 통보 철회를 요구하는 국회 기자회견도 열렸다.

그러자 KTV 측은 다시 지씨와 계약을 갱신하겠다고 했다. 지난 30일, 지씨에게 계약을 연장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그리고 31일 계약서를 작성했다. 여전히 형식은 프리랜서 계약이다. 지씨는 KTV 사태는 해고 철회로 끝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시 계약 갱신이 이뤄졌다 해도, 노동조건 개선이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지씨는 “KTV에선 쉽게 비정규직 프리랜서를 다루는 문제의 관행이 이어져왔다”며 “문체부 감사에서 편법 프리랜서·비정규직 계약과 불법 고용 관행에도 철저히 사실관계가 밝혀져야 한다”고 했다.

문체위 소속 이기헌 민주당 의원은 “KTV가 해고 통보를 철회하더라도 문체부 감사는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 비상계엄 자막 관련 부당 지시와 보복성 해고 통보뿐 아니라, 불법적 비정규직 노동 환경도 뿌리 뽑도록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KTV는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해온 지씨에 대해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향후 국회에서 편법계약과 부당한 업무지시에 대해서도 철저히 사실관계가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KTV 측은 지씨와 계약 갱신을 마쳤다고 밝히면서도 “프리랜서 스태프 63명과 마찬가지로 새롭게 서류 접수 등 계약을 체결해야 함을 전달했으며 계약해지를 통보한 적은 없다”고 했다. KTV 측은 지씨가 24시간 근무해온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노동자성은 부인했다. KTV 측은 “오탈자 수정이나 신속하게 반영될 사안을 요청한 적은 있다. 그러나 직접 지휘 감독을 받지 않고 장소와 시간에 제약 없이 자유롭게 업무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지씨는 “어처구니 없는 얘기다. 24시간 재택은 제가 원한 게 아니라 KTV 요청으로 이뤄졌다. 늘 화면으로 지휘·감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내가 자유롭다면 밤에 잠을 자고, 낮에도 마음대로 쉬지 않겠나”라고 했다.

KTV 측은 지씨 요청에도 24시간 근무 지시를 개선하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이 원장은 내란선전 혐의 고발에 대해선 “계엄 옹호와 같은 편향성은 일절 의도한 바 없으며 정치, 정당 뉴스를 배제하는 평상시 제작 방향 준수를 요청했을 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