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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국정감사] 언론·법조계 “언중위, 전략적 봉쇄 통제 장치 고민해야”
-이기헌 의원 “유통업계 1위, 노동안전 보도에 입막음 갈수록 심각”
쿠팡과 계열사들이 언론사들을 상대로 정정보도를 요구하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한 사건이 올해 11건에 달했고 대부분이 쿠팡 노동자 과로사망을 조명한 기사로 확인됐다. 쿠팡이 사회적 비판을 받는 노동안전 문제를 다루는 언론에 ‘입막음’ 제소로 대응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그 양태가 해마다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언론중재위로부터 받은 ‘쿠팡 주식회사 및 계열사 신청 조정사건 처리내역’을 보면 주식회사 쿠팡과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등 3개 쿠팡 계열사가 언론사를 상대로 정정보도나 손해배상 등을 요구하며 제기한 사건은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11건이었다. 2022년엔 6건, 2023년 8건으로 3년째 해마다 늘고 있다.
청구 취지를 보면 쿠팡 노동자의 과로나 사망 등 노동안전 문제를 다룬 보도가 주를 이뤘다. 올해 11건 중 7건에서 쿠팡은 물류센터·배송 노동자들의 죽음을 다룬 기사를 문제 삼았다. MBC 4건(온라인과 방송 포함), YTN 2건, 민중의소리 1건 순이다. 3건은 쿠팡의 입점업체 수수료 압박 의혹이나 주식 매각 시기를 비판한 보도(한국경제 2건, 한겨레 1건)였고, 1건(한겨레)은 쿠팡 배송기사들이 받는 명절 배송비 문제를 다뤘다.
쿠팡은 이들 기사에 모두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이 가운데 6건은 정정이 아닌 반론보도, 나머지 5건은 조정 불성립으로 결정됐다. 쿠팡은 조정 불성립된 보도에 대해 한겨레 상대로 소송 중이다. 조정 불성립은 언론중재위 중재부의 조정을 당사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를 의미한다.
지난해에도 쿠팡은 노동자 과로 등 노동 문제에 관한 보도 8건에 정정보도와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 언론사별로 한겨레 4건, 뉴스타파 2건, 세이프타임즈 2건이었다. 쿠팡은 정정이 아닌 반론보도 합의에 이른 뉴스타파를 제외하고 한겨레와 세이프타임즈 대상으로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2년엔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숨진 노동자 사망을 다룬 MBC 보도 4건, 쿠팡 가격정책이나 경영전략을 다룬 서울경제와 한겨레 보도 2건에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쿠팡은 그간 노동안전 등 공익적 성격이 짙은 보도에 소송을 제기하는 ‘전략적 봉쇄’ 대응으로 비판 받아왔다. 허위로 보기 어렵고 쿠팡 입장을 반영한 보도에도 삭제를 요구한 사례들이 확인되면서다.
쿠팡 과로사와 블랙리스트 보도 뒤 쿠팡 측 언론중재위 제소와 민·형사 소송에 대응하고 있는 MBC 차주혁 기자는 “기사에 사실 오류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정정과 반론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 이에 응하는 것은 언론사의 의무이다. 문제는 쿠팡 측이 언론사의 거듭된 사실 확인 요청에 응하지 않다가, 보도 뒤 사소한 흠결이 있거나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는 때에도 언론중재 신청과 민·형사 소송을 건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민형사 고소나 언중위 제소가 걸려오면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후속 취재가 일단 중단될 수밖에 없다”며 “다른 언론사도 유사한 일을 겪는 걸 보면 이는 후속 취재를 방해하기 위한 쿠팡의 언론 대응 전략으로 보인다. 언론중재나 소송 절차를 이런 식으로 악용하는 경우엔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차 기자는 “보도가 객관적 사실에 기반하고 쿠팡 측 반론을 반영한 상황에서도, 중재위원들이 쿠팡 측의 주장을 추가 반론으로 반영하도록 압박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며 “쿠팡이 고 장덕준 노동자 유족과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번 조정 결과를 악용할 가능성을 우려해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조정이 결렬돼 향후 쿠팡이 제기할 소송에 대비 중”이라고 했다. 그는 중재위원들이 해당 보도에 문제가 없음을 명확히 밝힌다면 언론을 상대로 한 무차별 입막음 소송에도 변화가 있을 거라 주장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쿠팡과 같은 기업이 언론중재 조정신청과 민사소송을 같이 거는 사례도 있는데, 이 경우 기자가 받는 압박이 큰 것은 물론이고 중재부도 이 사건을 더 크고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 기업이 언중위에서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려 거액의 소송을 거는 경우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은 “언론중재위가 이번 대기업의 노동실태 감시 보도와 같이 공익적이고 사실이 다르지 않은 보도에 대해선 언론중재 제도가 악용되지 않도록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회 김성순 변호사는 “한국에서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신청 제도는 언론 피해를 입은 일반인이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추고, 언론사도 패소 위험 부담을 낮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일종의 언론을 위한 방파제로 비판 받기도 한다”며 “문제는 최근 들어 되레 약자가 아닌 대기업 등 권력자가 압박 용도로 언론중재위를 남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자본과 사회 영향력을 갖춘 기업이 보도자료를 배포하거나 직접 나서 해명하면 될 일을 제소로 대응하면서 소권 남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언론중재위도 판례 법리를 통해서든 제도를 만들든 소권 남용을 통제할 내부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기헌 의원은 “국내 유통업계 1위 쿠팡에서 노동자 사망 사건이 거듭되는데도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보도에 언론중재위 제소와 소송을 한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라며 “특히 반론 취재를 마친 보도에도 정정보도나 기사 삭제를 요구하는 것은 입막음 성격이 짙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사건을 맡는 중재부는 기계적 조정을 강요하기보다 공익적인 사실 보도에 대해선 적극 판단하고, 언중위 차원에서도 전략적 봉쇄 성격이 명확한 사례에 대한 통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쿠팡은 22일 “당사는 객관적 사실과 다른 보도에 대해 언중위를 통해 사실관계를 바로 잡고 있으며, 당사의 언론 상대 소송은 언중위의 정정 취지 결정이나 권고에도 불구하고 허위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언론사에 대해 예외적으로 1~2건 진행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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